2024년 11월 6일, 대만 영화 〈청설(聽說)〉을 리메이크한 동명의 한국 영화가 개봉하였다. 원작이 그러하였듯, 신작 〈청설〉 역시 수어로 소통하는 농인 수영 선수, 그리고 그의 언니와 남자 주인공 간의 사랑을 다루었다. 14년만의 리메이크이지만, 영화에서 실제 농인은 원작과 동일하게 찾아볼 수 없었다. 청인 배우가 농인의 자리를 꿰찼기 때문이다.
한국 대중문화에서 농인과 수어를 다루는 사례는 늘고 있지만 실제 농인 배우가 캐스팅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이는 미국 영화 〈코다〉나 〈이터널스〉, 〈콰이어트 플레이스〉에서 적극적으로 농인 배우를 캐스팅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관련하여 한국 농사회 내외에서도 농인 배우를 캐스팅하지 않는 대중문화 업계에 대한 비판이 있었으며, 그에 대한 결실로 한국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농인 배우 이소별이 기념비적으로 농인 역할을 맡기도 하였다. 하지만 〈청설〉은 어김없이 농인 역할로 청인 배우를 캐스팅하며 14년 동안에 변화한 그 시류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였다. 농인은 단순히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이들은 수어를 제1 언어이자 일상어로 사용하며 농정체성을 바탕으로 고유한 문화와 사회를 이룬다. 한 평생을 음성언어와 청각문화에 의존하여 살아온 청인이 농인과 수어를 습득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농인 역할은 농인 배우가 맡아야 하며, 청인 배우의 농인 연기는 부자연스러울뿐더러 수어와 농문화에 대한 왜곡된 재현에 그칠 수 있다.
결말에서는 〈청설〉의 두 주인공이 청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농인이 아니라는 것이 반전 요소로 등장한다. 청인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설정의 개연성은 둘째치더라도, 장애를 청인들의 사랑 서사에 이용했다는 점에서 지극히 문제적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농인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주인공이 수어로 대화하는 장면에서 화면에 주인공의 손이 잘린 채 나와 농인 관객은 한국어 자막으로 이해해야 한다. 반면, 한국어 음성에 대한 자막은 없어 농인 및 청각장애인 관객은 관람할 수 없다. 배리어프리 상영에서도 자막이 화면에 삽입된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안경을 써야 확인할 수 있어 번거로웠다. 농인은 즐길 수도 없는, 청인이 청인에 의하고 청인을 위하여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 농인을 위한 존중이 일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기만적이다.
원작 이후 14년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고, 농인권에 대한 감수성도 증대되었지만 〈청설〉은 여전했다. 농인과 수어를 소재로 소비하는 과정에서 농당사자를 고려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대중문화 업계는 농당사자를 소외시키고 부정하는 기만적인 행태를 그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