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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MBC 지역방송사의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방송 〈선택 2024〉에서 수어통역사 영상이 가려져 송출되었다. MBC경남 및 제주MBC 등 지역방송사에서는 MBC의 〈선택 2024〉를 수중계하는 과정에서 자체 개표 현황 자막을 띄우기 위하여 수어통역사 영상 위에 타원형의 불투명한 자막을 삽입하였다. 이 탓에 각 지역방송사의 방송이 송출되는 경상남도 및 제주특별자치도에 거주 중인 농인 시청자들은 개표 상황을 한국수어로 전달받지 못하였다. 이는 SBS의 제주특별자치도 지역방송사인 JIBS가 수어통역사 영상을 가리지 않도록 조정하여 자체 자막을 삽입한 것과 대조적이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 선거 정보 자막 위로 수어통역사가 있다.
MBC 〈선택 2024〉 갈무리
(2024. 04. 10. 21:00경)
화면 오른쪽 아래에 타원형 자막이 있고, 그 위로 엠비씨경남의 자체 선거 정보 자막이 있다.
MBC경남 〈선택 2024〉 갈무리
(2024. 04. 10. 21:00경)

농인은 방송에서 지속적으로 소외되어 왔다. 지상파 3사가 메인뉴스 프로그램에서 수어통역을 제공하기 시작한 것은 2020년 9월이고, 종합편성채널의 경우 현재 JTBC가 유일하며 이조차도 2024년에서야 시작되었다. 뉴스 이외의 프로그램에서는 수어통역을 찾아볼 수 없어, 농인은 문화권도 제대로 향유하지 못하고 있다.

농인의 선거권 보장 실태도 심각하다. 선거공보 등에는 수어통역이 없어 각 정당 및 후보자의 정책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 어렵다.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에서 주최하는 후보자 토론회에 및 초청토론회에서도 여전히 수어통역사 한 명만 배치되었다. 복지TV에서 후보자별 일대일 수어통역을 제공하기는 했으나 유료 케이블채널 특성상 지상파 방송사 등에 비하여 접근성이 낮다. 한 명의 수어통역사가 모든 후보자의 말을 통역하여야 하고, 서로의 말이 맞물릴 경우 토론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는 문제는 이전부터 제기되었으나 지상파 방송사 등에서의 일대일 수어통역은 2024년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렇게 선거 전반에서 농인이 소외되고 있는 상황에서 얼마 없는 수어통역조차 자체 자막 삽입을 이유로 수어통역사를 가린 행위는 해당 지역에 거주 중인 농인의 알 권리를 박탈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한국수화언어법」은 농인이 “모든 생활영역에서 한국수어를 통하여 삶을 영위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를 명문화하고 있으나 방송사에서는 여전히 이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 유감을 표한다. 각 MBC 지역방송사는 왜 수어통역사를 가림 처리하였는지 경위를 밝히고, 농인의 정보접근권 보장을 위한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 및 공개하여야 한다.

한편 대다수 방송사의 개표방송에서 수어통역사가 작게 등장한 것도 유감스러운 사실이다. 수어는 손과 손가락을 이용한 수지기호와 얼굴 표정 등을 이용한 비수지기호로 이루어져있다. 따라서 손의 모양새와 표정을 명확하게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JTBC 〈2024 우리의 선택〉을 비롯한 대부분의 개표방송에서는 자막 배치를 이유로 평상시의 삼분의 이 크기로 제공되었다. 평소의 수어통역사 영상도 크기가 작아 보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된다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개표방송에서의 수어통역은 손도 얼굴도 제대로 안 보여 사실상 ‘있으나 마나’한 수준이었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 인터뷰 자막 위로 수어통역사가 있다. 수어통역사 영상의 세로 길이는 전체 화면 세로 길이의 약 삼십 퍼센트에 해당한다.
JTBC 〈뉴스룸〉 갈무리
(2024. 04. 09.)
화면 오른쪽 아래에 선거 정보 자막 위로 수어통역사가 있다. 수어통역사 영상의 세로 길이는 전체 화면 세로 길이의 약 이십 퍼센트에 해당한다.
JTBC 〈2024 우리의 선택〉 갈무리
(2024. 04. 10.)

농인 역시 유권자로서 선거에 대한 정보를 청인 유권자와 동일하게 접하고 제공받을 권리를 지닌다. 또한, 농인 역시 시청자로서 청인 시청자와 동일하게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존재한다. 이는 정당한 편의 제공을 넘어, 각 방송사가 유권자이자 시청자로서 권리를 가진 농인에게 당연히 제공하여야 하는 의무이다. 그렇기에 방송사도 단순히 수어통역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으로 농인이 보기 편하고 만족할 수 있는 수어통역을 제공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다음 선거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로, 2026년에 예정되어 있다. 농인의 기본권과 정보접근권을 보장할 수 있는 선거방송이 진행될 수 있도록 앞으로 남은 2년간 철저하게 준비할 것을 촉구한다.